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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매일신보 체제와 조선인 기자 활동

게시2026년 10월 27일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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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10월 데라우치 총독의 위임을 받은 도쿠토미 소호가 경성일보와 매일신보를 통합 운영하며 조선의 언론을 일본인 중심으로 재편했다.

매일신보는 1912년 3월 한글 5호 활자와 8단제 지면, 윤전기를 도입해 사회면을 강화하며 독자 이탈을 막았다. 1917년 입사한 남상일은 1918년 12월 진명여학교 난로 화재 사건을 3단 톱기사로 키워 독자들의 성금을 이끌어냈다고 회고했다.

이 시기 매일신보에서 훈련받은 이상협과 유광렬 등 젊은 기자들은 1920년 동아일보 창간 이후 대거 옮겨가 1920년대 한글 신문 도약의 토대를 만들었다.

1910년대 조선에서 발행되는 유일한 한글 신문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였다. 당시 매일신보는 총독부의 일본어 기관지인 경성일보의 1개 부서로 사옥 역시 같이 쓰며 ‘곁방살이’를 하고 있었다. 1917년 매일신보에 입사한 기자 남상일은 사옥의 북쪽 구역은 매일신보, 남쪽 구역은 경성일보가 쓰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매일신보 편집국은 3·1운동 이후인 1920년 3월 경성일보 편집국에서 독립했다. 사진의 오른쪽 큰 사진이 경성일보 편집국, 왼쪽 작은 사진이 매일신보 편집국. 경성일보사지(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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