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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 생명을 살리는 성스러운 공간

게시2026년 5월 26일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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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은 단순한 음식 준비 공간을 넘어 생명을 살려내는 근원적 공간이자 영혼을 맑게 하는 성스러운 제단이다. 고대 의학서 『황제내경』에서 '최고의 의원은 주방에 있다'고 단언했으며, 우리 조상들은 음식으로 병을 고치는 식의(食醫)를 가장 귀한 의사로 여겼다. 정갈한 음식은 몸뿐 아니라 영혼까지 어루만져주는 반면, 조급함과 인공의 맛에 절여진 음식은 내면을 황폐하게 만든다.

혼밥이 일상화된 시대일수록 스스로를 위해 불을 지펴야 한다. 나를 위해 쌀을 씻고 밥을 짓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손님인 자신을 대접하는 숭고한 예우이기 때문이다. 뙤약볕 아래 야생초를 뜯고 그것으로 차려낸 한 끼를 마주할 때, 우리의 세포들은 땅의 기운을 빌려 무너진 자신을 다시 세우는 생명의 수혈을 경험한다.

주방은 우리가 낮 동안 세상에서 입은 보이지 않는 상처들을 매일 밤 조용히 봉합하고 처방하는 세상에서 가장 작고 따뜻한 진료소다. 부엌의 불빛이 꺼지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칼이 도마에 닿는 소리와 국물이 끓어오르는 노랫소리 속에서 삶의 허기는 채워진다.

고진하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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