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일보, 1945년 8월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사이 일본의 혼란 분석
게시2026년 9월 24일 04:35
newming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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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제2장 '혼란의 이틀'에서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와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 투하 사이 일본 수뇌부의 대응을 상세히 분석했다. 미 전략공군사령부는 8월 7일 괌에서 핵심 장교들을 소집해 두 번째 원폭 투하 일정을 8월 9일로 앞당겼으며, 세 번째 폭탄으로 도쿄 투하까지 검토했다.
일본 육군은 히로시마 폭격 후에도 통상 보고 체계를 유지했고, 육군대신 아나미 고레치카는 8월 7일 비상각료회의에서 "트루먼 성명이 기만책일 수 있다"며 원폭 존재를 부정했다. 그러나 아나미는 같은 날 일기에서 미국의 원폭 사용을 인정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이 혼란 속에서 도고 시게노리 외무대신만이 항복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도고는 1945년 5월부터 항복을 주장했으나 군부의 반대로 거부됐으며, 소련 중재론도 국제정세에 정통한 도고는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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