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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광, 상서와 모함으로 출세한 간신 정치의 전형

게시2026년 10월 23일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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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자 출신 유자광은 1467년 이시애의 난 때 올린 상서로 세조의 눈에 들어 발탁되었다. 그는 문과 장원으로 정3품 당상관에 오르는 등 빠르게 출세했다. 1468년 남이의 옥사를 주도해 1등 공신에 올랐다.

성종 때 그는 한명회를 탄핵하고 병조판서 현석규를 음해해 유배형을 받았다. 1498년에는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세조의 왕위 찬탈과 결부시켜 무오사화를 일으켰다. 이 사화로 사형 6명과 유배 31명 등 직접 피해자가 50여 명에 이르렀다.

그는 1506년 중종반정 뒤에도 공신에 올라 살아남았으나 1507년 4월 신하들의 집요한 탄핵으로 유배형에 처해졌다. 1512년 유배지에서 74세로 사망했다. 그의 행적은 왕권을 지키는 도구로 쓰인 간신 정치의 폐해를 보여준다고 평가된다.

유자광은 자신의 사망 후 부관참시를 염려해 봉분을 만들지 말라는 유언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정확한 무덤의 위치를 모르는 상태다. 남원 고죽동의 영광 류씨 문중 묘역에 있는 한 주인 없는 봉분. [사진 이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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