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인종·의종 시대, 왕건 유훈에 의존한 술수 정치의 악순환
게시2026년 8월 25일 20:47
newming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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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청의 난(1135년)을 진압한 후에도 고려 왕실은 풍수와 술수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종은 장원정에, 의종은 영의의 말에 혹하여 이궁들을 건설하며 태조 왕건의 유훈이라는 명목 아래 반복적으로 같은 방식을 추구했다.
이는 왕건이 도선의 풍수 권위에 기반하여 남긴 지침이 후대 임금들에게 신비화되면서 발생한 현상이었다. 의종은 재위 22년째 <훈요십조>의 문구를 표면적으로만 따르며 '상벌을 계절에 따라 시행하겠다'는 교서를 발표했으나, 이는 유훈의 본의를 외면한 것이었다.
과거의 영웅에 집착할수록 그 진면목이 사라지고 신비화되며, 이는 해석의 다양성을 제거하고 이미 실패한 방법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져 사회의 퇴행을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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