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밍

AI 뉴스 플랫폼, 흩어진 뉴스를 잇다

앱으로 보기

이종식 교수, 중국 기술관료주의의 역사적 기원 분석

게시2026년 8월 14일 05:06

AI가 1개의 뉴스를 요약했어요.

중국이 엔지니어 중심의 통치 체제로 변모한 과정은 마오주의 혁명 이상의 좌절과 권위주의 정치의 결합으로 비롯됐다고 이종식 카이스트 교수가 분석했다. 1957년 중국공산당이 기술관료주의를 반동 이데올로기로 낙인찍었던 것과 달리, 1958년 마오쩌둥의 '홍과 전을 겸비하라' 구호가 칭화대학 총장 장난샹에 의해 엘리트 양성 강령으로 변용되면서 엔지니어 지배의 토대가 마련됐다.

문화대혁명은 이 기획을 정면으로 타격했으나, 1976년 마오 사후 덩샤오핑이 '홍은 반드시 전을 갖춰야 한다'고 선언하면서 전문성이 통치 자격 자체로 재정의됐다. 1980년대 혁명 원로 137만명이 물러나고 대졸 간부 47만명이 진입했으며, 2002년 정치국 상무위원회 9명 중 8명이 엔지니어 출신이 되었다.

중국의 붉은 기술관료주의는 급진적 평등을 향한 마오주의 혁명 정치의 포기와 민주적 토론을 우회하는 권위주의 정치의 결합으로 작동하고 있다. 1989년 천안문 이후 통치의 기술관료화가 가속되면서 정치적 질문은 당과 과학에 대한 반역으로 묵살되는 구조가 고착됐다.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만들어진 포스터로, 마오쩌둥 주석이 ‘홍위병’이라 쓰인 완장을 차고, 뒤에 홍위병들이 깃발을 들고 전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不到长城非好汉’(부도장성비호한)이란 구호는 ‘장성에 이르지 못하면 대장부가 아니다’란 뜻으로 마오가 지은 시가에서 나온 말이다.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중국자료센터 제공

AI 뉴스 플랫폼, 흩어진 뉴스를 잇다

Newming
Google Play에서 다운로드App Store에서 다운로드